분석 · RICHMAP 사건 지도 — 검증 보도 기반 · 전망 아닌 구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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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스스로를 부수며 올라온 40년
대부분의 거인은 ‘폭락 → 부활’의 V자를 그린다. 삼성은 다르다. 삼성의 곡선엔 골이 여러 번 있는데, 그중 몇 개는 누가 떠민 게 아니라 — 잘나갈 때 스스로 판 것이다. 이 글은 위기를 사고가 아니라 연료로 써온 한 회사의 40년을 본다.
Tokyo 도쿄에서 건 베팅
1983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전자신문). 당시 일본조차 “삼성이 반도체를 한다”는 걸 무모하다 봤다. ‘호암의 마지막 꿈’이라 불린 이 베팅이, 훗날 삼성을 메모리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출발점이 됐다.
✦ 제국의 첫 수는 안전한 확장이 아니라 무모한 베팅이었다. 삼성의 DNA엔 ‘남이 안 할 때 건다’는 도박이 새겨져 있다.
Renewal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프랑크푸르트,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했다(노컷뉴스). 회사가 망해서가 아니라, 잘나가던 와중에 던진 자기부정이었다. 양(量)에서 질(質)로 — 가장 위태롭지 않을 때, 스스로를 가장 크게 흔들었다.
✦ 삼성의 첫 번째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회장실에서 시작됐다. 위기가 없을 때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 그게 신경영의 본질이었다.
Furnace 15만 대를 불태우다
1995년 3월 구미공장 운동장,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불량 휴대폰·제품 15만 대가 불길에 던져졌다. ‘애니콜 화형식’이다(ZDNet). 자기 손으로 만든 물건을 자기 손으로 태우는 충격요법 — 그 잿더미에서 ‘애니콜 신화’가 일어섰다.
✦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말이 아니라 불이었다. 삼성은 품질을 ‘구호’가 아니라 ‘화형’으로 가르쳤다 — 자기파괴를 도약의 의식으로 삼은 회사.
Winter 발화, 그리고 총수의 부재
그러나 모든 위기가 자발적인 건 아니었다. 2016년, 갤럭시 노트7이 배터리 발화로 출시 54일 만에 전량 리콜·단종됐다(ZDNet) — 삼성 스마트폰 역사상 최대 굴욕. 이듬해 2017년 2월엔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며 ‘총수 부재’의 겨울이 닥쳤다(이데일리). 스스로 부순 위기와 달리, 이건 떠밀려 떨어진 골이었다.
✦ 자기파괴는 도약이 되지만, 닥쳐온 위기는 시험이 된다. 노트7과 구속은 ‘삼성이 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위기를 견디는 회사’로 바뀌는 분기점이었다.
Peak 58조, 초격차의 정점
겨울은 길지 않았다. 2018년,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타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58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한국일보). 노트7의 굴욕도, 총수 부재도, 반도체의 호황 앞에서 묻혔다. ‘초격차’라는 말이 이때 가장 크게 빛났다.
✦ 58조는 삼성이 도달한 가장 높은 봉우리 —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돌아가지 못한 자리. 정점은 종종, 그 회사의 기준점이자 그리움이 된다.
Overtaken 처음으로 1등을 내주다
그리고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 왔다. AI 붐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삼성은 엔비디아 납품·품질 인증이 지연되며 SK하이닉스에 1등 자리를 내줬다(ZDNet). 메모리에서 ‘영원한 1등’이던 삼성이, 처음으로 ‘추격자’가 된 것이다. 자기파괴로도, 호황으로도 메우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위기.
✦ 삼성의 진짜 시험은 적자가 아니라 ‘2등’이었다. 한 번도 진 적 없는 분야에서 처음 졌을 때 — 그때 비로소 그 회사의 진짜 체력이 드러난다.
Counter 반격, 아직 정점 아래
2025년을 지나며 삼성은 반격에 나섰다. HBM 신뢰를 되찾고 파운드리를 흑자로 돌려세웠으며(시사저널e), SK하이닉스와 나란히 차세대 HBM4 공급을 확정했다(전자신문). 다만 곡선은 정직하게 말한다 — 회복은 진행 중이고, 아직 2018년의 정점에는 닿지 못했다.
✦ 반격은 시작됐지만 봉우리는 멀다. 삼성의 부활을 확인하는 건 주가가 아니라, ‘처음 진 분야에서 다시 1등을 되찾느냐’다.
Closing
삼성의 곡선엔 폭락도 파산도 없다. 대신 골이 여러 번 있고, 그 골의 절반은 스스로 판 것이다. 신경영과 화형식은 잘나갈 때의 자기파괴였고, 노트7과 구속과 HBM 추월은 닥쳐온 시험이었다. 삼성을 여기까지 끌어온 건 한 번의 발명이 아니라 — 위기를 연료로 태워온 40년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