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광화문 도심
건물 핀을 누르면 그 자리에서 소유 기업·주가·뉴스로. — 카메라로 비추면 정보가 뜨는 그 경험의 정지-사진판(v0).
📍 광화문 — 세종대로·종로 일대. 보험·미디어·트로피 오피스가 모인 도심 CBD
18개 랜드마크 중 6곳은 간판 ≠ 건물주 — 입주 기업이 아니라 펀드·리츠·정부·외국자본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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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 소유주
18개 · 검증 데이터흥국생명빌딩 해머링맨
◆ 단독 소유흥국생명은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다. 사옥 지하에는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가 들어섰는데, 이는 예술에 관심이 깊었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로비와 3층 세화미술관까지 시민에게 개방하는 '열린 사옥' 콘셉트가 특징이다.
- 2000 흥국생명빌딩 준공 · 1996년 12월 착공해 2000년 10월 준공됐다. 지하 7층·지상 24층, 높이 약 127m 규모로 태광그룹 계열 흥국생명의 사옥이다. ↗
- 2002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맨' 설치 · 2002년 6월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대형 조형물 '해머링맨(망치질하는 사람)'이 설치됐다. 높이 22m, 무게 5t으로 이 시리즈 중 세계 최대급이며, 낮 시간 약 1분 17초마다 한 번씩 망치를 휘두른다. ↗
- 2008 해머링맨을 도로 쪽으로 옮기다 · 2008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 따라 사옥 뒤편에 있던 해머링맨을 도로 쪽으로 약 4.8m 앞으로 내오고 주변에 시민 휴식공간을 조성했다. 이후 광화문의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서울파이낸스센터 (SFC) Seoul Finance Center
◆ 단독 소유서울파이낸스센터는 GIC가 한국에서 처음 매입한 부동산으로, 2000년 약 3,550억 원에 인수해 이듬해 완공했다. 이후 유상감자·배당으로 약 3,700억 원을 회수했고, 2024년엔 약 1조 4,000억 원대를 기대하며 24년 만의 매각을 추진했다. 골드만삭스·JP모건·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IB가 입주한 도심 프라임 오피스의 대표 격이다.
- 1984 옛 유진관광 호텔 자리 · 이 자리엔 1984년 유진관광이 운영하던 10층 규모 호텔이 있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대형 호텔로 재건축하려다 건축 비리와 자금난으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
- 1993 롯데관광 김기병, 유진관광 인수 · 1993년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이 유진관광을 인수해 사업을 재개했다. 오피스로 용도를 바꿨으나 고도제한 해제를 기다리다 지연됐고, IMF 외환위기로 유진관광은 부도가 났다. ↗
- 2000 싱가포르투자청(GIC) 인수 · 2000년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약 4억 달러(약 3,500억 원)에 인수했다. GIC가 한국에서 처음 사들인 부동산이다. ↗
- 2001 지상 30층 프라임 오피스 준공 · 2001년 5월 중구 태평로에 지상 30층·지하 8층, 최고 높이 124m로 완공됐다. 설계엔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참여했다. ↗
교보생명빌딩 광화문 교보문고
◆ 단독 소유교보생명빌딩은 창업주 신용호의 집념이 세운 종로 1번지의 상징이다. 1958년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25년 안에 서울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다'고 한 약속을 22년 만인 1980년에 지켰고, 그 지하에 1981년 교보문고를 들여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신념을 현실로 옮겼다. 1991년부터는 외벽 글판으로 계절마다 시민에게 한 줄을 건네고 있다.
- 1980 교보생명빌딩 완공 · 창업주 신용호가 1958년 대한교육보험을 세우며 '좋은 땅에 좋은 사옥을 짓겠다'고 한 약속대로, 1977년 착공한 광화문 사옥을 1980년 완공했다. 설계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로 유명한 건축가 시저 펠리가 맡았고, 공식 준공 승인은 1984년에 이뤄졌다. ↗
- 1981 교보문고 광화문점 개점 · 1981년 6월 교보생명빌딩 지하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문을 열었다. 약 1,100평에 60만 권을 갖춘 국내 최초의 대형서점으로, 오늘날 교보문고의 상징적 플래그십 매장이 되었다. ↗
- 1991 광화문글판 시작 · 1991년 1월 창업주 신용호의 제안으로 외벽에 대형 글판이 처음 내걸렸다. 2001년부터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마다 시인의 글귀로 문구를 교체하는 전통이 자리잡아, 서울의 대표적 인문 문화 상징이 되었다. ↗
KT 광화문빌딩 (East) KT 광화문지사
◆ 단독 소유이 자리는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문을 연 대한민국 통신의 발상지다. 옛 한국통신(한국전기통신공사)의 광화문 본사가 있던 자리로, 1986년 준공된 웨스트 사옥이 본사 역할을 하다 1999년 본사가 분당으로 이전했다. 2002년 민영화로 KT가 된 뒤, 2015년 그 동쪽에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이스트 사옥을 세워 광화문을 다시 KT의 상징적 거점으로 삼았다.
- 1885 한성전보총국 개국, 통신의 시작 · 지금의 KT 광화문빌딩 East 부지는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개국한 자리로, 대한민국 통신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KT는 이 자리의 역사성을 기려 신사옥을 이곳에 세웠다. ↗
- 1986 광화문 West 사옥, 한국통신 본사 · 현재의 KT 광화문빌딩 West는 1986년 준공돼 40년 가까이 세종대로를 지켜왔다. 1999년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으로 본사가 분당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옛 광화문 사옥이 본사 역할을 했다. ↗
- 2015 렌조 피아노 설계 East 사옥 준공 · 기존 사옥 동쪽에 세운 KT 광화문빌딩 East가 2015년 1월 준공돼 그해 1월 KT가 입주했다.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으며 지상 25층·지하 6층 규모다. ↗
동아미디어센터 동아일보
◆ 단독 소유동아일보 소유·본사 — 세종대로 광화문, 1층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 1926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 완공 · 1926년 창업자 김성수의 뜻에 따라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 설계로 동아일보 전용 사옥이 세워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사 건물로 꼽히며,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
- 1992 동아일보 본사, 충정로로 이전 · 동아일보는 1992년 본사를 충정로 사옥으로 옮기며 광화문 옛 사옥에서 신문 발행을 마쳤다. 66년간 신문을 찍던 건물은 이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
- 1996 일민미술관으로 다시 열다 · 리모델링을 거쳐 1996년 옛 사옥이 일민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름은 창업자 김성수의 장남이자 동아일보 명예회장이던 '일민' 김상만의 호에서 따왔다. ↗
- 1999 동아미디어센터(신사옥) 완공 · 1999년 옛 사옥 바로 옆에 광화문 신사옥 동아미디어센터가 완공됐다. 두 건물을 잇는 통로가 설치돼, 옛 미술관 건물과 새 미디어 사옥이 나란히 세종대로변에 서 있게 됐다. ↗
그랑서울 청진동 트윈 오피스
◆ 단독 소유2014년 초 국민연금이 코크렙청진18·19호 리츠를 통해 GS건설 계열사로부터 약 1조2368억 원에 그랑서울을 사들였다. 매입 조건으로 GS건설이 한 동을 20년, 다른 동을 10년 임차하는 '세일앤리스백' 계약을 맺어, 판 쪽이 도로 세입자로 남는 구조가 됐다.
- 1939 이 일대는 피맛골, 노포 한일관의 터 · 그랑서울 자리는 조선시대 서민이 양반의 말 행차를 피해 다니던 뒷골목 '피맛골'과 청진동 일대다. 1939년 종로에서 문을 연 서울식 갈비·냉면 노포 한일관도 이 부근에 있었다. ↗
- 2008 재개발로 노포 한일관이 압구정으로 · 2007년 피맛골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7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킨 한일관은 2008년 강남 압구정동으로 옮겨갔다. 오래된 골목 상권이 대형 오피스 개발로 대체된 상징적 장면이다. ↗
- 2013 GS건설 시공 그랑서울 준공 · 2013년 GS건설 시공으로 지하 7층·지상 24층 쌍둥이 오피스 2개동 그랑서울이 준공됐다. 연면적 약 17만5천㎡ 규모로, 저층부는 리테일, 상층부는 오피스로 채워졌다. ↗
트윈트리타워 경복궁 앞 V자 쌍둥이 타워
◆ 단독 소유경복궁 근정전에서 뒤돌아보면 행각 기와지붕 너머로 주름진 두 동이 보인다. 옛 한국일보 사옥이 헐린 자리에 조병수 건축가가 땅의 예각을 감추는 곡면으로 세운 이 건물은 전통과 현대의 대비를 이루며 광화문 풍경에 자리 잡았고, 현재는 상장 공모리츠 이지스밸류리츠가 실질 자산으로 운용한다.
- 2010 경복궁 앞 트윈트리타워 준공 · 쌍둥이 곡면 오피스 두 동으로 이루어진 트윈트리타워가 2010년 12월 준공돼 경복궁·광화문 앞에 새 풍경을 만들었다. A동과 B동이 지하를 공유하는 구조다. ↗
- 2010 건축가 조병수의 고목 형상 설계 · 설계는 대지의 흔적을 중시하는 조병수 건축가가 맡았다. 홈이 파인 고목의 밑동을 닮은 3차원 곡면으로 형태를 잡아 이름 그대로 '트윈트리'가 됐다. ↗
- 2010 김수근의 옛 한국일보 사옥 터 · 이 자리는 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해 1968년 이래 중학동 랜드마크였던 옛 한국일보 사옥 터다. 재개발로 헐린 뒤 두 타워를 안팎으로 내어 그 사이에 공공 동선과 쌈지공원을 두었다. ↗
콘코디언 빌딩 옛 금호아시아나 본사
◆ 단독 소유금호아시아나가 무리한 인수합병 뒤 유동성 위기로 2018년 4180억 원에 판 이 건물은, 5년 뒤 2023년 마스턴투자운용에 약 6292억 원으로 되팔렸다. 그룹의 몰락 서사와 광화문 오피스 가치 상승이 한 건물에 겹쳐 있는 셈이다.
- 2008 금호아시아나 신사옥으로 준공 · 2008년 10월 이 건물이 준공돼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사옥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광화문·새문안로를 대표하는 지하 8층·지상 29층 규모의 대형 오피스다. ↗
- 2018 그룹 유동성 위기에 본사를 팔다 ·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후유증 등으로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금호아시아나는 입주 약 10년 만인 2018년 본사 사옥을 DWS자산운용에 4180억 원에 매각했다. 이때 이름이 '콘코디언'으로 바뀌었다. ↗
- 2023 마스턴투자운용이 약 6292억에 인수 · 2022년 9월 매매 협상을 거쳐 2023년 마스턴투자운용이 DWS로부터 콘코디언 빌딩을 약 6292억 원(3.3㎡당 약 3450만 원)에 인수했다. ↗
한국프레스센터 태평로 언론빌딩
◆ 합작한국프레스센터는 소유와 운영이 분리된 독특한 건물이다. 1985년 공익자금으로 지어질 때 소유권은 코바코(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서울신문이 층으로 나눠(1~11층 서울신문, 12~20층 코바코) 갖고, 관리·운영권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맡았다. 한국신문협회·기자협회·관훈클럽 등 주요 언론단체가 이곳에 상주해 왔다.
- 1924 매일신보·경성일보 사옥이 이 자리로 · 일제강점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사옥이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태평로 25번지)로 옮겨왔다. 총독부가 원래 있던 서울시청 터에 경성부청을 지으려 부지 양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
- 1945 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 광복 뒤인 1945년 11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이 자리에서 새 출발했다. 이후 이 부지는 서울신문의 태평로 사옥 터가 됐다. ↗
- 1960 4·19 시위대 방화로 사옥 소실 · 1960년 4·19혁명 당시 성난 시위대의 방화로 서울신문 사옥이 불탔다. 이후 정부가 건물을 사들여 완공한 뒤 언론단체들이 세운 한국신문회관에 넘겼고, 1962년 5월 신문회관이 문을 열었다. ↗
- 1985 한국프레스센터 준공 · 노후한 옛 사옥을 헐고 새로 지은 20층 프레스센터가 1982년 착공해 1985년 4월 준공했다. 공익자금으로 지어져 1~11층은 서울신문, 12~20층은 코바코가 소유하는 구조가 됐다. ↗
코리아나호텔 조선일보가(家)의 광화문 호텔
◆ 단독 소유1972년 조선일보사 호텔로 문 연 곳으로, 지금도 조선일보 오너 방씨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법인 코리아나호텔 소유다. 조선일보 일부 사무실도 이 건물에 있다.
- 1972 '조선일보사 호텔코리아나'로 개관 · 1969년 착공해 1971년 준공된 이 호텔은 1972년 12월 '조선일보사 호텔코리아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객실은 268실이었다. ↗
- 1974 주식회사 코리아나호텔로 상호 변경 · 1974년 8월 상호를 '주식회사 코리아나호텔'로 바꿨고, 1989년 관광호텔 특2등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는 14층 규모에 340여 실을 갖췄다. ↗
- 2021 운영을 이끈 방용훈 회장 별세 · 오랫동안 코리아나호텔을 이끈 방용훈 회장이 2021년 2월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조선일보 방일영 전 회장의 차남이자 방상훈 사장의 동생이다. ↗
종로타워 꼭대기 구름 타워
◆ 단독 소유삼성생명이 지어 소유하던 종로타워는 2016년 약 3840억 원에 이지스자산운용 펀드로, 2019년 약 4640억 원에 KB자산운용으로, 2022년 10월 약 6215억 원에 SK그룹 계열 SK리츠로 넘어갔다. 6년 새 손바뀜마다 몸값이 뛴 대형 오피스 자산의 전형이다.
- 1937 친일 기업가 박흥식의 화신백화점 · 1937년 11월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지하 1층·지상 6층 화신백화점 신관이 준공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경영한 대표적 백화점으로, 주인 박흥식은 대표적 친일 기업가로 꼽힌다. ↗
- 1987 반세기 랜드마크 화신백화점 철거 · 1987년 3월 화신백화점 신관이 헐리기 시작했다. 1937년 문을 연 지 꼭 50년 만으로, 도심 재개발과 종로 확장에 밀려 종로의 랜드마크가 사라졌다. ↗
- 1999 라파엘 비뇰리 설계 종로타워 준공 · 1995년 공모에서 우루과이 출신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의 안이 채택돼 1999년 종로타워가 완공됐다. 꼭대기에 매달린 듯한 33층 '탑클라우드' 구조가 특징이며, 삼성생명이 지어 소유했다. ↗
- 2023 설계자 라파엘 비뇰리 별세 · 종로타워를 설계한 라파엘 비뇰리가 2023년 3월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
더케이트윈타워 중학동 경복궁 앞 쌍둥이빌딩
◆ 단독 소유더케이트윈타워는 준공 초기 공실 위험을 떠안은 투자자에게 큰 보상이 돌아간 사례로 꼽힌다. 2014년 KKR이 후순위로,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약 1300억 원 우선주로 들어와 높은 배당을 챙겼고, 2018년 삼성SRA가 역대 최고가에 인수하면서 매도 측은 다시 큰 차익을 남겼다. 조선시대 중부학당 터라는 역사성과 경복궁 조망이 겹쳐 서울 오피스 시장의 대표적 대어로 반복 거론된다.
- 2012 중학동에 준공, 원래 이름은 중학빌딩 · 경복궁 옆 종로구 중학동에 지하 6층·지상 16층 트윈타워로 2012년 준공됐다. 설계는 간삼건축이 맡았고, 조선시대 4부학당 중 하나인 중부학당 터에 세워져 공사 중 발견된 주춧돌을 1층에 전시하고 있다. ↗
- 2014 KKR·교직원공제회가 약 5000억에 인수 · 미국계 사모펀드 KKR과 홍콩 림 어드바이저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총 약 5000억 원에 매입했다. 교직원공제회가 약 1300억 원 우선주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건물 이름이 공제회 브랜드 '더케이(The-K)'를 딴 더케이트윈타워로 굳어졌다. ↗
- 2018 삼성SRA가 약 7140억에 인수, 당시 최고가 · 2018년 2월 삼성SRA자산운용이 약 7140억 원에 사들였다. ㎡당 약 850만 원으로 당시 서울 상업용 빌딩 역대 최고 단가였고, 매도 측 KKR·림 어드바이저스는 상당한 차익을 남겼다. ↗
센터포인트 광화문 김앤장 입주 프라임 오피스
◆ 단독 소유센터포인트 광화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2031년까지 전체 면적의 약 80%를 임차한 '김앤장 빌딩'으로 통한다. 마스턴투자운용(2012년 약 2140억 원)에서 코람코 코크렙36호 리츠(2016년 약 3200억 원)를 거쳐, 2025년 교보AIM자산운용이 4000억 원대에 인수하며 소유주가 바뀌었다. 김앤장의 장기 임차라는 안정적 현금흐름이 매 거래마다 몸값을 끌어올린 핵심 매력이었다.
- 2012 마스턴투자운용, 준공 전 인수 · 준공에 앞선 2012년 마스턴투자운용이 약 2140억 원에 사들이며 개발·운용을 맡았다. ↗
- 2013 도렴24지구 재개발로 준공 · 종로구 도렴동 일대 노후 건물을 철거한 도렴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개발돼 2013년 8월 준공됐다. 시공은 쌍용건설이 맡았고 지하 7층·지상 20층 규모의 프라임급 오피스다. ↗
- 2016 코람코 코크렙36호로 편입 · 코람코자산신탁이 2016년 약 3200억 원에 인수해 코크렙제36호 리츠로 담아 보유해 왔다. 당시 주요 임차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현대해상 등이었다. ↗
- 2025 교보AIM운용, 4000억대 셰어딜 인수 · 코람코가 코크렙36호를 통해 진행한 매각에서 2025년 5월 교보AIM자산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3.3㎡당 3670만 원, 4000억 원대 초중반 가격이며 교보생명·캡스톤을 앵커 투자자로 뒀다. ↗
타워8 청진동 도심 오피스
◆ 합작타워8이 선 자리는 조선 왕조 내내 서민이 대로의 말을 피해 다니던 피맛골 청진동으로, 빈대떡과 해장국 골목이 600여 년을 이어온 곳이다. 2009년 청진8지구 재개발로 옛 골목은 헐렸고, 발굴에서 나온 시전행랑과 우물터 일부가 복원돼 새 빌딩 앞에 남았다. 2015년 지엘메트로씨티 PFV가 세운 이 오피스는 DWS(옛 도이치)가 약 3246억 원에 첫 주인이 됐다가, 2023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신협중앙회 품으로 약 5490억 원에 넘어갔다.
- 2009 옛 피맛골 청진동 자리 · 이 자리는 조선시대부터 600여 년 이어진 피맛골 청진동 골목으로 빈대떡·해장국집이 늘어섰던 곳이다. 2009년 무렵 재개발로 철거됐고, 청진8지구 발굴에서 조선시대 시전행랑과 우물터가 드러나 복원된 우물터가 타워8 앞에 남아 있다. ↗
- 2015 청진8지구 재개발로 준공 · 타워8은 종로구 청진동(종로5길 7)에 청진8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신축돼 2015년 4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지하 7층·지상 24층 규모로 시행은 지엘메트로씨티 PFV가 맡았다. ↗
- 2015 DWS자산운용, 첫 매입 · 준공 직후 DWS자산운용(옛 도이치자산운용)이 시행사로부터 약 3246억 원에 사들여 첫 소유자가 됐다. ↗
- 2023 미래에셋·신협 품으로 ·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사모펀드로 2023년 8월 DWS로부터 약 5490억 원에 인수했다. 신협중앙회가 2000억 원을 대는 앵커 투자자로 참여했다. ↗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 대공연장
◆ 정부 소유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가 소유·운영하는 시립 공연장으로, 1972년 화재로 사라진 서울시민회관 자리를 이어받아 1978년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대극장은 3,800석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였고 동양 최대 파이프오르간을 갖췄다. 2003~2004년 대극장 대대적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세종대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 1972 전신 서울시민회관 화재로 소실 · 지금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이 1972년 12월 2일 공연 도중 무대 조명에서 시작된 화재로 전소됐고, 50여 명이 사망했다. 이 참사를 계기로 서울시가 같은 자리에 대형 문화공간 건립을 추진했다. ↗
- 1978 건축가 엄덕문 설계로 개관 · 1974년 착공해 현상공모로 선정된 엄덕문건축연구소 설계로 지어져 1978년 4월 14일 개관했다. 화강석 외벽 등 한국 전통양식의 현대적 구현을 지향한 근대건축 대표작으로 꼽힌다. ↗
- 1978 동양 최대 파이프오르간 설치 · 개관과 함께 대극장에 독일 칼 슈케사가 제작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다. 8,098개의 파이프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고, 외형은 거문고 모양을 본떴다. ↗
- 1984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 첫 내한 · 1984년 10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사상 처음 한국을 찾아 이 무대에 올랐다. 한독수교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당시 클래식계 최대 화제였다. ↗
정부서울청사 세종대로 중앙청사
◆ 정부 소유대한민국 정부 소유 건물로, 조선시대 삼군부·예조 터에 세워졌다. 1970년 준공 당시 '정부종합청사'였으나 대전청사·세종청사가 차례로 생기면서 세종로청사, 정부중앙청사, 정부서울청사로 이름이 네 번 바뀌었다. 여러 중앙 부처가 입주하는 행정의 상징 공간이다.
- 1967 정부종합청사 착공 · 세종로에 흩어져 있던 중앙 부처를 한곳에 모으려 1967년 7월 착공했다. 조선시대 삼군부와 예조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
- 1970 지상 19층 청사 준공 · 1970년 12월 지하 3층·지상 19층, 최고 높이 84m의 철골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준공됐다. 총공사비 43억 8,950만 원이 들었다. ↗
- 2012 청사 방화·투신 사건 · 2012년 10월 14일 오후, 위조 신분증으로 정문을 통과한 60대 남성이 18층 교육과학기술부 사무실에 시너로 불을 지른 뒤 창문을 깨고 투신했다. 불은 6분 만에 진화됐고 남성은 숨졌다. ↗
- 2013 정부서울청사로 개칭 · 정부종합청사에서 세종로청사(1997), 정부중앙청사(1999)를 거쳐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완공 이후 2013년 1월 지금의 정부서울청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옛 문체부 청사
◆ 정부 소유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광화문광장 동편에 자리한 정부 소유 국립박물관이다. 건물 내력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인데, 1961년 미국 원조기관 USOM이 대지를 제공받아 똑같은 건물 두 채를 나란히 지어 한 채씩 나눠 쓴 일란성 쌍둥이의 한쪽이다. 나머지 한 채가 지금도 옆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이다.
- 1961 미국 원조로 지어진 쌍둥이 건물 · 1960년 착공해 1961년 9월 준공됐다. 주한미국경제협조처(USOM)가 대지를 제공받아 똑같은 건물 두 채를 지어 한 채씩 나눠 쓰기로 하면서, 옆 미국대사관 건물과 일란성 쌍둥이로 세워졌다. ↗
- 1961 최고회의부터 문화부 청사까지 · 준공 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쓴 뒤 경제기획원·재무부, 이후 문화공보부를 거쳐 옛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로 쓰였다. 똑같이 지어진 옆 건물은 USOM 청사로 쓰이다 1968년부터 주한 미국대사관이 됐다. ↗
- 2012 정부청사 리모델링 1호로 재탄생 · 옛 문체부 청사는 2010년 11월부터 약 19개월간 골조만 남기고 전면 리모델링돼 국내 최초의 정부청사 리모델링 사례가 됐다. 외관도 직사각형에서 'ㄷ'자형으로 바뀌었다. ↗
- 2012 국내 최초 국립근현대사박물관 개관 · 2012년 12월 26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개항 이후 근현대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국내 최초의 국립근현대사박물관으로, 상설전시실 4개와 유물 약 1,500점을 갖췄다. ↗
강북삼성병원 종로 평동, 삼성의료재단 병원
◆ 운영사강북삼성병원 부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품고 있다. 이 자리엔 백범 김구가 환국 후 집무실 겸 거처로 삼은 경교장이 있었고,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이곳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졌다. 이후 여러 손을 거쳐 1968년 삼성이 세운 고려병원이 인수했고, 1994년 삼성그룹에 편입돼 이듬해 강북삼성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병원 안에는 지금도 사적으로 지정된 경교장이 보존돼 있다.
- 1949 이 자리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서거 · 지금의 병원 부지에는 백범 김구가 환국 후 집무실 겸 거처로 쓰던 임시정부 청사 경교장이 있었고, 1949년 6월 26일 이곳에서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경교장은 오래 병원 시설로 쓰이다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지정됐다. ↗
- 1968 경교장 자리에 고려병원 개원 · 1968년 11월 삼성이 세운 고려병원이 종로구 새문안로에서 문을 열었다. 12개 진료과, 100병상 규모의 민간종합병원으로 출발했다. ↗
- 1994 삼성의료원 편입 · 1994년 12월 고려병원이 삼성의료원으로 편입됐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서울병원과 성균관대 의대를 세우던 흐름 속에서 삼성 의료 계열로 합쳐졌다. ↗
- 1995 강북삼성병원으로 개명 · 1995년 6월 병원 명칭을 고려병원에서 강북삼성병원으로 바꿨다. 한강 이북에 있는 삼성 계열 병원이라는 뜻이며, 현재 의료법인 삼성의료재단이 운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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